동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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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신은 원래 작고 나이 어린 신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 실체를 숨기고 있는 큰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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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무교의 주축을 이루는 신명의 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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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실에서 무당이 만나게 되는 동자는 큰 신이 아니라 작은 신이다.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때로는 심술궂기도 하다.
그러나 무당이 그렇게 느끼는 동자의 뒤에는 엄청난 신명의 세계가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제부터 그 점을 풀어 보기로 한다.
마고를 그린 그림에는 중년의 여인이 동자를 안고 있는 그림이 눈에 띌 때가 있다.
대체로 마고 그림은 묘령의 독신 여인상으로 그려지는데, 그를 삼신으로 그릴 때에는 동자의 어머니상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동자(童子)라는 말의 동(童)을 파자하면 立 +甲+土가 되는데, 처음 땅에 세운 솟대라는 뜻이다.
땅(土)에 경계를 그어 넷으로 나누고(전田이라는 뜻이다),
그 가운데에 장대를 하나 세운 것(곤?이라는 뜻이다)을 나타낸 문자가 리(里) 자인데, 리(里) 자에 들어 있는
갑(甲) 자에 육십 갑자(六十甲字)를 따져서 처음이라는 뜻이 있음으로, 이 솟대는 우리 조상이 최초로 세운 솟대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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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는 마고가 딸들을 시집보내면서 마을 가운데에 세우기 시작한 신대라는 뜻이다.
이 신대를 마을에 세우려면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곳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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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는 황해 바다 가운데에 있는 삼신산에 사는 분이었는데,
마고의 능력이 미치는 범위에 속하는 땅과 바다를 마고지나라고 하였다. 마고의 나라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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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산은 봉래`영주`방장이라고 하였다. 마고가 그의 딸들을 마고지나 영역 내에 있는 작은 나라로 시집을 보내면
그들이 시집 간 나라를 영주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 영주라는 지명을 가진 곳에는 마고가 딸을 시집보낸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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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영주로 대표적인 고장이 오늘날의 제주도이다. 마고가 딸 셋을 시집보낸 곳이라고 하여 영주라고 하였다.
?옛날에 제주도를 탐랑(貪狼)·탐라(耽羅)·영주(瀛洲)·제주(濟州)라고 하였는데, 탐랑은 이미 별(북극성의 별칭)이라는 뜻이고,
탐라는 우리별 북극성의 나라(하늘 임금님의 나라라는 뜻)라는 뜻이고,
영주는 마고의 따님이 시집온 섬이라는 뜻이고, 제주는 백제(百濟)에서 건너온 땅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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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섬의 이름만 보아도, 제주도가 백제에서 마고 신앙이 건너가 뿌리를 내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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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고마·곰·할미·마구로 불리는 말미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말미는 마고할미의 준말이다.
진오기 굿을 바리공주 굿이라고 하는데, 이 굿에서 무조(巫祖)로 모시는 바리공주의 다른 이름이 말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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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한성백제시대에 백제의 국도인 한성을 5부로 나누고 각 부에 할미당을 두어 오곰주라고 하였다.
오금 주가 후에 오공주로 와전이 되어 사람들이 다섯 공주로 불렀다. 백제가 국세가 약해져서 공주로 천도하게 되었는데,
오곰주 중에서 왕궁에서 모시던 공주 하나만 모시고 가는 바람에, 다른 네 공주를 모신 곰주신당이 돌보는 이가 없어
폐사(廢祠)가 되었고, 이로 인하여 다섯 공주가 전쟁 때 굶어 죽었다는 전설이 퍼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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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공주에는 공주 한 분만을 모시게 된 곳이라서 곰 주라고 하다가 공주로 불리게 된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
곰 주가 피란 갈 때 건넌 나루를 곰 나루라고 하였고, 이 곰 나루라는 지명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후대에 곰을 한자로 웅(熊) 자로 바꾸어 그곳을 웅진(熊津)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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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나루 전설을 보면,
원래 어미 곰이 아들 곰 2마리를 데리고 살다가 산에 나무하러 들어온 나무꾼을 보고 납치하여 데리고 살았다.
그러나 나무꾼은 자나 깨나 탈출할 궁리만 하다가
어느 날 어미 곰의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금강을 건너 남쪽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어미 곰이 금강을 건너가는 나무꾼을 돌아오라고 애타게 불렀으나 그냥 도망치는 바람에 슬퍼하다가
아들 둘을 껴안고 금강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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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설은 전설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전해 오는 가장 훌륭한 백제의 종교 신화이고, 국조 신화이고, 나라 멸망 신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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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에서 어미 곰은 마고 어미를 상징한다. 곰이 마고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이다.
그가 투신자살한 금강은 실은 금강이 아니라 곰강이다. 말하자면 마고 강인 것이다.
한성백제시대에 융성했던 마고 신앙이
백제의 국도 공주의 시대에 금강으로 피난 와서 어떻게 종말을 고하게 되었는가를 이 신화가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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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에 마고 신앙을 퍼뜨린 분이 백제를 세운 소서노와 그의 아들 온조왕이다.
소서노가 이 일을 하였다. 소서노라는 이름에서 그가 한 일을 유추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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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노(召西弩)라는 이름에, 그의 집안이 입에 칼을 문(召) 무당의 집안임이 밝혀지고,
?그가 한반도의 서쪽(?州)나 濟水)에 있는 지금의 중국 땅에서 왔음이 밝혀지고,
또 그가 노(弩)(근접전에 쓰는 활)를 어깨에 멘 무장임이 밝혀진다.
그는 무력으로 한반도의 중부지역을 평정하고, 그곳을 이에 벌노라고 하였다.
그는 잉벌노에 그가 무조로 모시는 마고를 숭상하는 마고 신앙을 보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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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노가 굿을 하고 지나간 산들을 노고산(老姑山)이라고 하였다. 노고는 마고할미라는 뜻이다.
이 이름에서 소서노가 어떤 굿을 하였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그가 전쟁을 하다 죽은 군사들의 넋을 달래어
마고성으로 보내드리는 의식인 수왕(水往) 가르기(진오귀(眞惡鬼)·지나기)를 하였을 것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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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노 기라는 문자를 만들어내게 한 오구라는 문자는 북두칠성에 속한 옥형성(玉衡星)이다.
옥형성에 인간의 수명을 기록한 책인 생명책을 든 최대감이 망자들의 넋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노귀굿에서 수왕 가르 기를 한 넋들을 맞아들이는 일을 최대감이 하고 있다.
그래서 북두칠성이 인간의 생명을 주관한다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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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감의 최(崔)는 산山+추?자로 무덤에 사는 새를 의미한다.
이 새는 지노귀굿을 하는 무당, 즉 샤먼(巳母)을 뜻하는 문자로 볼 수 있는 문자이다.
마을 가운데에 세운 솟대를 이(里)라고 한다면 산에서 넋을 지켜주는 새를 최고 할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추?는 새를 인종 아이콘으로 쓰던 집단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단군조선시대에 팔가(八加)에 속해 있던 노가(鷺加)·학가(鶴加)·응가(鷹加)의 세 집단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 중에서 노가에 속한 남자들이
붉은 갓에 백로 깃을 세워서(주립朱笠· 백로갓) 썼을 것이므로 최성(崔姓)이 노가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동자 굿을 할 때 무당이 아이가 쓸 수 있는 크기로 만든 작은 붉은 갓을 들고 춤을 추는데,
동자가 망자의 넋이 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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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왕검을 감흥신으로 청배하는 초감흥굿에서는 단군왕검을 상징하는 감흥신이 백로깃을 꽂은 붉은 갓을 쓴다.
붉은 갓의 붉은 색은 단군왕검의 조상인 한인천제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한인천제를 적제(赤帝)라고 하였는데, 주립은 말하자면 적제가 쓰던 갓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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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천제는 풍이족 출신이다. 풍이족이 팔풍(八風)의 하나인 융풍(融風)에서 태어났는데,
융풍이 남쪽에서 부는 바람이므로 남쪽을 의미하는 적색(赤色)이 그를 상징하는 색이 되는 것이다.
한인천제는 인류 최초로 축융(祝融)이라는 신격(神格)을 갖게 되었는데,
축융이란 융풍을 제사지낼 때 축문을 읽는 축관(祝官)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제관은 아니고 제관을 보조하는 보조자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사람을 무격(巫覡)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누가 한인천제 당시에 축융의 시중을 받는 제관이 되었을까?
한 인천제는 오이 족(烏夷族) 출신의 항영(姮英)과 혼인하여 그를 비로 맞아들였다.
항영의 이름 항(姮) 자에 그가 해맞이하는 무당이라는 의미가 나와 있음으로 그를 제관으로 보는 것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의 <초어楚語>의 무(巫) 자 해석에는 왼쪽의 인(人)을 무격(巫覡)이라고 하였고,
오른쪽의 인(人)을 무무(巫舞)라고 하였다. 무격은 무무를 곁에서 바라보며 보조해 주는 남자이다.
말하자면 경무(經巫)가 되는 것이다.
그는 잽이(악사)가 되기도 하고, 무무가 소슬(사슬)을 세울 때 힘쓰는 일을 도와주기도 하는 무당의 보조자가 된다.
무무에 대해서는 신이 내려 춤을 추는 여자로 해석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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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어>는 초나라 말이라는 뜻인데, 초는 풍이 쪽의 후예로, 우리나라의 소성(蘇姓) 집안의 조상이 되는 기성(己姓) 집안에서 세운 나라이다. 그러므로 우리와 같은 동이족이다.
우리 역사에서 여자에게 처음 신이 내린 때가 단군조선의 가륵단군 때이므로 <초어>의 기록은 가륵단군 이후의 기록으로 볼 수 있다.
한인천제를 무격으로 보고, 그의 비 항영을 무무로 보면, 무무의 조상, 즉 무조는 누가 되는가?
무무의 조상은 그의 딸들을 영주로 시집 보내어 솟대를 세우게 한 마고가 된다.
그는 하늘에서는 직녀이고, 직녀의 남편은 북두칠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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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칠성을 웅(熊)(곰)이라고 하는데, 웅의 부인은 웅녀(熊女)가 되고, 웅녀의 어머니는 신웅(神熊)이 된다.
신웅을 부모로 하여 태어난 분이 단군왕검이다.
그러므로 마고의 아들 동자는 단군왕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단군신화에서 웅녀의 아들 단군왕검과 맥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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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를 추적하다 보니까 우리의 상고시대 역사가 줄줄이 딸려 나온 셈이 되었는데,
동자는 우리 무교에서 역사적으로 이렇게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고가 안고 있는 어린 동자가 동이족을 상징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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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고는 동이족의 삼신이 된다. 삼신할미를 마고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모델이 후대에 태어나는 종교인 기독교에서 마리아와 예수 모자상의 원형,
마야부인과 석가모니의 원형이 된다는 점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역사를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출처-천부삼인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