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인과 무업인
?무교인과 무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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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을 보내면서 내 나름대로 정리해야 할 것이 있어서 이 글을 쓰기로 하였다.
관심을 두고 있는 무교(巫敎)에 대해서도 무엇인가 정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 글을 쓰기로 한 것이다.
나는 무당을 2 부류로 분류한다.
한 부류는 무교인(巫敎人)이고 다른 한 부류는 (巫業人)이다.
무교인은 종교인으로서 의식화 된 무업인이고, 무업인은 생계형 무업 종사자이다.
나의 이러한 분류는 간간히 기회가 주어질 대마다 무업인과 어울려 굿을 하거나 굿당에서 그들이 하는 굿을 보면서 얻어낸 결론이다.
첫째,
무업을 하는 분들이 태어난 곳이 그의 무업인생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어디에서 태어났느냐가 그의 무업인생을 결정짓는 것이다.
강화도나, 황해도 구월산이나, 황해도의 바닷가나, 황해에 좌정한 섬들이 무당을 배출하는 성지(聖地)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또 그가 신 내림을 받은 장소가 그의 무업인생을 좌우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삼각산(三角山)에서 내림굿을 한 사람이 잘 불리는 것을 보았는데,
이는 나라에서 나라조상제사인 중사(中祀)를 지낼 수 있는 산이 신 내림을 할 수 있는 산이 된다는 한 예가 될 것이다.
셋째,
무당은 그가 타고난 천성이 그의 무업인생을 담보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런 분들은 유년시절부터 천성적인 기질을 보인다. 장단을 한번 보고 듣고 기억 한다던가,
스스로 무구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굿의 흉내를 낸다던가, 미친 증세를 보인다던가, 이해하기 힘든 증세를 보이는 것이다.
넷째,
그가 어떤 선생님을 만났는가도 중요하다.
훌륭한 신부모를 만난 만신은 역시 훌륭한 정신과 기량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분들은 그의 신부모를 존경하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은 신부모를 존경하지 못한다.
오늘 날은 신부모를 존경하지 못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아서 과연 무교의 앞날이 평탄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무업인들 사이에 근거가 없는 유언비어가 나돌기 시작한다. 지례짐작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일부는 앞날이 평탄하지 못할 것이라고 위축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축 될 것이 무엇이 있는가.
내가 앞에서 무교인의 운명을 결정짓는 요소 네 가지를 들었는데,
무업인을 무교인으로 업그레이드 시켜 주는 단서가 바로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비결서秘訣書>를 공부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비결서>에는 신명이 있다. 무당이 <비결서>를 공부하지 않으면 <비결서>에서 잠자는 신명을 깨워드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을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는 훌륭한 당대(當代)의 무당으로 만들어가지도 못한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무교인은 거의 없고 무업인은 너무나 많아 흘러넘친다.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사람들이 무업인 중에 많고,
그들이 하는 행위가 범죄행위이거나 범죄행위에 근접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듯하다.
앞으로 무업인이 자신을 스스로 무교인으로 업그레이드 시키지 않으면 무교계(巫敎界)에서 도태(淘汰)되는 현상이 올 것이라고 본다.
당골로 오는 사람, 신도로 오는 사람이 무당과 인터넷을 공유하므로
무교에 대한 지식이 날로 풍성해져 가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업인들이 구태의연한 작태를 보이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발전하지 못하고 답보상태에 있다면, 불교에서 보듯이 다른 종교에서도 무교의 영역을 잠식해 올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본다.
이는 무교의 앞날을 위하여 심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무교의 홀로서기가 가능해 지려면 너나 없는 각성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모 급에 들 수 있는 무교 스승들이 많이 나와야 하고,
숨어 있는 그런 분들이 있다면, 그런 분들이 사회 전면에 나서주어야 한다고 본다.
천존.천황 - 천부삼인 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