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사설 풀이
비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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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1 13:43
앞에 인용한 무가사설을 풀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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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 가중(家中) 칠성당이 되어 나라만신 중상(僧像)이 되고
굿을 하는 제가집이 칠성당으로 바뀌고,
굿을 하는 제가집이 칠성당으로 바뀌고,
칠성당에서 굿을 해야 할 나라만신이 중이 되어, 무당은 사라지고, 중이 이 굿을 관장하기 시작한다.
굿판이 이렇게 되면, 무당이 부정치고 나서 모셔들인
본산부군신(본산신령) 먼산부군신(먼산신령) 본향부군신(본산신령)들은 졸지에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고 만다.
이 곳이 법당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굿을 주관하고 계신 감흥신(단군왕검)도 존재 자체가 없어진다.
?
?이렇게 중이 들어와서 깽판을 놓는 굿이 제석굿이다. 이름도 하나님굿을 제석굿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원래 중이 굿을 할 수 없으니까 무당에게 중의 탈을 씌워 굿을 해온 것이 제석굿이다.
만신이 중의 행세를 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가
이 나라 역사에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이한 현상이 생겨나게 된 것은 아닐까?
무당이 중의 탈을 쓰게 된 때가 이 땅에서 불교가 한창 융성했던 삼국시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이 당나라에게 멸망하게 되는 원인이 내 조상을 버리고 남의 조상을 데려다가 내조상의 자리에 세웠기 때문에
조상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삼국공동멸망이라는 비운을 당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위 사설을 읽으면, 중의 교활함과 무당의 어리석음이 한눈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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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인대자(五十大者)(巨人) 팔장삼(八長衫) 시(細)모시 장삼 들쳐 입고
석자석치(3尺3寸) 반고깔에 시모시 고깔 숙여
바른 어깨 흥룡(興龍)가사 왼 어깨 철룡(天龍)가사
팔백염주 목에 걸고 서발염주 손목에 걸고
제비홍띠 눌러 띠고 가사책보(袈裟冊褓) 둘러매고
육환장(六環杖 )둘러 짚고 팔선녀(八仙女)를 희롱(戱弄)한다
제석굿에서 무교의 하나님을 집어삼킨 중의 도덕성에 대하여 시비를 걸 수 있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석자석치(3尺3寸) 반고깔에 시모시 고깔 숙여
바른 어깨 흥룡(興龍)가사 왼 어깨 철룡(天龍)가사
팔백염주 목에 걸고 서발염주 손목에 걸고
제비홍띠 눌러 띠고 가사책보(袈裟冊褓) 둘러매고
육환장(六環杖 )둘러 짚고 팔선녀(八仙女)를 희롱(戱弄)한다
제석굿에서 무교의 하나님을 집어삼킨 중의 도덕성에 대하여 시비를 걸 수 있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그는 외양만 그럴듯하게 꾸민 중이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팔선녀를 희롱하는 것이다.
그의 외모는 무교를 송두리째 집어삼킨 거인인 쉬인대자. 즉 50척 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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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은 우리 역사에서 대인(大人)이라고 하였다. 대인은 천제, 천왕, 왕검에게 부여되는 명칭이다.
대인이라는 말을 직설로 쓰지 않고 쉬인대자라는 은어(隱語)을 쓴 것으로 보아서
쉬인대자에 대하여 항거하는 마음을 표출한 것으로 생각된다.
?
?쉬인대자는 세모시로 지은 8척 장삼(長衫)을 걸쳐 입고 있다.
장삼은 왕이 입는 포(袍)이다. 왕이 입은 장삼을 곤룡포(袞龍袍)라고 하였다.
임금이 천제나 천왕으로 불리던 시대에는 곤룡포라고 하지 않고 천룡포 또는 천룡이라고 하였다.
천룡이라는 말은 후대에 와서 천익(天翼)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이는 뱀(巳)이 새(鳥)가 된다는 금문(金文)의 이치에서 나오는 것이다.
쉬인대자가 장삼(천룡포)을 입었으므로 불교를 숭상했던 강력한 임금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불교가 가장 융성했던 때가 무교가 급속히 쇠퇴한 때라고 본다.
?
?중은 무교를 접수했다는 표시로,
무교의 상징인 흰색 삼각산고깔을 펼쳐서 석자세치짜리 반고깔을 만들어 썼다.
삼각산고깔은 삼신이 쓰던 삼신모자이다. 고깔 흉내만 낸 고깔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불교가 들어오면서 무교의 모체가 되는 삼신교가 해체되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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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은 오른쪽 어깨에 왼쪽 어깨에 천(청, 철)룡가사를 오른쪽 어깨에 흥(홍)룡가사를 걸친다.
(다른 무가사설에서는 청 가사는 왼쪽 어깨, 홍 가사는 오른쪽 어깨에 걸친다고 하였다)
그가 가사 2개를 좌우어깨에 걸치고 있다는 것은 천룡의 어깨에 표시한 일광패와 월광패를 가리기 위해서이다.
원래 무당은 왼쪽 어깨에 일광표시, 오른쪽 어깨에 월광표시를 한 장삼을 입는다.
이 장삼을 입고 있으면, 등 뒤에는 칠성이 있고, 이마 앞에 삼태성이 있게 된다.
?
칠성과 삼태성 사이에 일월광이 있다는 표시이다. 이는 <천부경>에 나오는 천부인의 완성을 표현한 것이다.
일석삼극(一析三極)이 운삼사성환(運三四成環)이 되었다는 표시이다.
중이 오른쪽 어깨에 흥룡가사를 걸치고 왼쪽 어깨에 청룡가사를 걸치는 이유는
무당이 입던 장삼의 어깨에 표시된 일광과 월광을 감추고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천부경>을 무력화시키자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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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백염주는 목에 걸고 서발염주는 손목에 걸었다의 800염주는 천지인에서 천을 대표하는 태양의 태양공덕(太陽功德),
즉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을 상징한다.
서발염주는 <천부경>에 나타난 음양조화(陰陽造化)의 결과를 뜻하는 일석삼극(一析三極0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참조, 심원공정-26 철무리굿 제석굿 무복에 나타나는 ‘유제국’, 염주에 나타나는 <천부경>의 세계>)
제비홍띠 눌러 띠고 가사책보(袈裟冊褓) 둘러매고
육환장(六環杖) 둘러 짚고 팔선녀(八仙女)를 희롱(戱弄)한다
제비홍띠 눌러 띠고 가사책보(袈裟冊褓) 둘러매고
육환장(六環杖) 둘러 짚고 팔선녀(八仙女)를 희롱(戱弄)한다
?중은 화려하게 제비를 수놓은 홍띠를 장삼 위에 두른다.
홍띠에 수놓은 제비는 한자로 쓰면 연(燕)으로 순임금의 첫째 부인 아황(娥皇)에서 시작된 족성(族姓)이다.
해바라기를 뜻하는 아자에서 시작하여 기러기안(雁)으로 변하고, 봉(鳳)과 붕(鵬)으로 변했다가,
연으로 변했는데, 아황에게서는 씨칭(氏稱)인 箕·奇·己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기성(己姓)을 한국을 세운 풍이족의 족성으로 보는 필자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여기에 우리 상고시대의 역사가 맞물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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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은 가사로 만든 책보를 둘러맨다. 이 부분은 백성을 교화시키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이는데,
그가 백성을 교화할 생각은 하지 않고 팔선녀나 희롱한다고 했으니 폼으로 둘러매고 다닌다고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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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은 고리가 6개 달린 환장을 둘러 집고 팔선녀를 희롱하러 떠난다. 8선녀는 중국의 선녀이고, 7선녀는 조선의 선녀이다.
이외에 하늘에 속한 옥황선녀가 있다. 선녀에는 이렇게 세 종류가 있다.
그러므로 중이 희롱하러 떠나는 8선년는 중국의 선녀이지 우리의 선녀가 아니다.
임무 종료했으므로 원대로 복귀하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부분을 깊이 상고해 볼 필요가 있다.
그가 단군조선을 멸망시킨 진시황의 첩자 서불과 같은 존재일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상장고(上長鼓)는 북이 되고 상교대(上敎臺)는 상좌(上座)되어
본문에서 상교대와 상좌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상장고(上長鼓)는 북이 되고 상교대(上敎臺)는 상좌(上座)되어
본문에서 상교대와 상좌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상교대는 무교가 융성했을 때, 무교신사에서 왕검의 사자가 가지고 오는 교지를 받던 장소임을 나타낸다.
교지를 받들면서 제천의식이 거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상좌는 불교가 들어와 상교대를 없애고 그 자리에 중이 앉는 상좌를 만들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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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 덕교신사를 접수하여 절이 된다.
그러나 덕교신사에서 쓰던 명칭인 <삼신각>·<삼성각>·<대웅전>·<독성각>이라는 명칭은 없어지지 않는다.
<삼신각>은 마고 궁희 소희 여삼신을 모신 전각이고,
<삼성각>은 한인 한웅 단군왕검을 모신 전각이고, <대웅전>은 한웅천왕을 모시던 전각이고,
<독성각>은 인류의 시조인 나반을 모시던 전각이다.
?중이 무교신사를 점령하면서, 굿을 할 때 쓰던 상장고는 북으로 바뀐다.
오십삼(五十三) 분이 서천서역국(西天西域國)을 떠나 오십(五十) 분은 회중(會衆)하고
삼세 분이 약수삼천리(弱水三千里)를 건너와 조선국(朝鮮國)으로 오시어서
덕교신사가 절이 되면서 서천서역국으로부터 떠나온 53명의 중들 중에서 50명이 절에 모인다.
오십삼(五十三) 분이 서천서역국(西天西域國)을 떠나 오십(五十) 분은 회중(會衆)하고
삼세 분이 약수삼천리(弱水三千里)를 건너와 조선국(朝鮮國)으로 오시어서
덕교신사가 절이 되면서 서천서역국으로부터 떠나온 53명의 중들 중에서 50명이 절에 모인다.
세 분은 약수 3천리를 건너 조선국으로 들어온다.
50명의 중은 불교의 원산지에서 직접 공급되는 인력이고, 3명은 중원 쪽에서 충원되는 인력이다.
강원도 금강산의 유점사에 거좌(踞坐)하고
그 산맥을 타고 귀룡사(歸龍寺, 九龍寺)로 내왕(來往)할 제
높은 산에 법당(法堂) 짓고 낮은 산에 절간 지어 깊은 산천 초당(草堂)지어
법당에선 염불소리 초당에선 목탁소리
중들은 강원도 금강산의 유점사에 거좌한다. 이때가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온 소수림왕 2년 이후가 될 것으로 본다.
강원도 금강산의 유점사에 거좌(踞坐)하고
그 산맥을 타고 귀룡사(歸龍寺, 九龍寺)로 내왕(來往)할 제
높은 산에 법당(法堂) 짓고 낮은 산에 절간 지어 깊은 산천 초당(草堂)지어
법당에선 염불소리 초당에선 목탁소리
중들은 강원도 금강산의 유점사에 거좌한다. 이때가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온 소수림왕 2년 이후가 될 것으로 본다.
중들은 금강산의 산맥을 타고, 귀룡사를 오간다.
중들이 금강산 줄기를 타고 왔으므로 높은 곳에 법당을 짓고, 얕은 곳에 절을 짓고,
깊은 산천에 초당을 지었다.
본문은 불교가 전래했을 초기에 법당과 절과 초당을 어디에 지었는가를 보여준다.
법당에서는 염불소리가 들리고, 초당에서는 목탁소리가 들린다.
?
?이제 시대가 변했으므로, 무교의 원형을 찾아 볼 필요가 있다.
원래 중 즉 스님은 신선의 다른 이름인 선임(仙任)의 와전이다.
선임이 스님으로 변하고, 선(仙)이 승(丞 僧)으로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을 신선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노중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