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의 물애기씨

두 분의 물애기씨

비룡 0 2313

두 분의 물애기씨

두 분의 물애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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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풀당은 애기씨당으로도 불리는데, 한국도로안전관리공단 곁에 있는 SK 주유소 뒤쪽에 있다.

바위 위에 한옥으로 지었다. 처음 이 곳에 수풀당이 들어설 때는 애기산으로 불리는 나무가 우거진 풀숲이었다.

산자락에 10여 대(代) 대를 이어 이곳에 수풀당이 있었다고 하니, 조선왕조 중기부터 이 곳에 있었으므로 연조가 꽤 오래된 곳이다.

굿을 할 때 물애기씨는 원래 공주의 신분이라 원삼족두리 복장에 발랄하고 기품이 있는 굿을 한다.

애기씨라는 말은 궁중에서만 쓰는 말로 미혼의 공주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 곳의 물애기씨들은 임금님의 따님인 공주를 말하는 것이다.

원래 수풀당은 대궐에 있었다. 그때의 이름은 서울(西?)당이었다. 서울이 원래 한양의 이름이다.

단군왕검이 발해만에 있는 현덕부(顯德府) 백악(白岳)

(청와대 뒷산 이름도 백악이다. 청와대는 원래 경복궁에 속한 땅으로 조선왕조의 왕궁을 수비하던 군대가 훈련하던 곳이었다.)

아래 국도를 정했는데, 국도의 이름이 서울이었다. 서울이란 서쪽에 우거진 숲이라는 말이다.

무슨 이유인지 이 곳에 서울당을 내어 지어야 한다고 하여,

대궐에 있던 서울당을 곳에 내어다 짓고 대궐에서 임금님을 호위하는 별감들이 나와서 물애기씨를 숙위하였다.

세월이 흘러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여 조선왕조가 망하면서, 서울당은 어느새 수풀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원 이름을 찾자면, 앞으로는 옛 이름 그대로 서울당으로 환원하여 불려야 할 것이다.

그렇게 불러야 할 이유가 있다.

물애기씨는 한자로 바꾸어 쓰면 하백녀(河伯女)가 되고, 하백녀가 단군왕검의 두 부인 중의 한 부인이 되기 때문이다.

단군왕검이 BC2333년에 배달나라를 세우면서(조선으로 국호를 바꾼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이다)

그해에 서울에서 부인으로 맞아들인 분이 하백녀, 즉 물애기씨이다.

그래서 서울과 물애기씨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물애기씨에는 하백녀(河伯女)라는 뜻 외에 무애기(巫愛己)氏라는 뜻도 있다.

무애기씨는 기성족(己姓族)에게서 첫 무당이 나왔다는 뜻이다.

기성족은 9900년 전에 한국(桓國)을 세운 한인천제를 배출한 풍이족(風夷族)에서 나온 성(姓)이다.

풍이족에서 풍(風) 강(姜) 기(己) 희(姬)와 같은 성들이 나왔는데,

기(己)는 풍(風)의 사(巳)(풍이족의 족표(族表)인 뱀 아이콘, 風에 들어 있는 ?이 巳와 같은 뜻으로 쓴 말이다.

둘 다 작은 뱀, 살모사라는 뜻이다.)에서 나온 성이다. 단군조선 가륵단군 때 기성족에서 무당이 나왔는데,

이때의 무당은 신이 내려 춤을 추는 여무(女巫)를 의미하였다.

이 신이 내려 춤을 추는 여무를 무무(巫舞)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춤을 출 때 신이 내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백녀는 한인천제의 60대 손인 기성족 출신의 기풍(己豊)의 아들 부소갑(扶蘇岬)의 따님이다.

부소갑의 부(扶)는 부(復)와 같은 뜻으로 한인천제의 휘(諱) 부해(復解)(공처럼 둥근 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둥근 해가 뜨는 곳을 부상(扶桑)이라고 하였으므로, 부(復)를 부(扶)로 바꾸어 쓴 것이다.

부(扶)는 한국(桓國)의 한(桓), 단국(檀國)의 단(檀)과 같은 뜻이다.

소(蘇)는 단국(檀國)(단군조선의 전신으로 단군왕검이 조선을 세우기 전에 태자로 있던 나라이다)의

홍제(洪帝) 8년에 황제(黃帝)의 손자인 제곡고신(帝?高辛)과 반목하던

기풍이 홍제에게 귀순하여 숙신(肅愼)(지금의 하얼빈 북쪽 땅)에 정착하여

단국과 제곡고신국의 국경인 수분하(綏芬河)(황하의 서쪽 끝 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지류)를 건너 침입해 왔을 때

이를 물리친 공로로 사성賜姓한 성이다.

기풍이 사성을 하여 소풍(蘇豊)(소성(蘇姓) 사성 이후로 진주소씨(晉州蘇氏)의 시조가 된다)으로 불리게 되었다.

갑(岬)은 소풍이 물가에 살았으므로 갑이라고 한 것이다.

부소갑(扶蘇岬)에는 이러한 의미가 있다. 부소갑을 달리 비서갑(菲西岬)이라고도 하였다.

하얼빈 북쪽 불함산(弗咸山)이 있는 곳, 태백산(太白山)으로 가는 길목이 비서갑이다.

한웅천왕은 천제(天祭) 지내러 태백산에 갈 때 이 곳을 통과하였다.

하백녀(물애기씨)를 비서갑의 따님, 혹은 부소갑의 따님이라고 하는 말은 다 같은 말이다.

물애기씨의 기씨(己氏)에는 이러한 뜻이 숨어 있다. 그를 신격화 하여 비서갑성모(菲西岬聖母)라고 하였다.

마고대신에겐 두 따님이 있었다.

두 따님이 궁희(穹姬)와 소희(巢姬)이다. 물애기씨의 원조는 궁희와 소희 두 분이 된다.

<부도지符都誌>에 따르면, 마고대신이 마고대성을 폐쇄하고 그의 자손들을 추방할 때,

궁희와 소희 두 따님을 데리고 천수(天水)를 끌어들여 청소를 하였고,

이후로 굿을 할 때 무당이 물애기씨 두 분을 데리고 천수치기를 해 왔으므로,

궁희와 소희를 굿에 나오는 물애기씨로 보고,

후대에 와서 비서갑의 따님 하백녀도 하백녀가 단군왕검과 혼인하여 단군조선의 신모가 되었으므로, 그도 또한 물애기씨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추론해 보면, 현재 수풀당의 당주 물애기씨의 몸주로 와 게신 분들을 궁희와 소희 두 분으로 볼 수 있고,

또한 단군조선의 신모가 되신 하백녀도 이들 물애기씨와 합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물애기씨당 당주 물애기씨의 어머니에게 마고대신이 와 계시니, 이도 마고삼신의 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님이 굿을 할 때는 물애기씨 두 분의 신이 오셔 물애기씨굿을 하게 된다.

한 분 물애기씨는 앉아 계시고 다른 한 분 물애기씨는 맴돌이를 하신다. 그가 맴돌이를 할 때 걸음걸음 띠워 놓는 걸음새가 태평무이다.

지금 명가(明嘉) 강선영씨가 추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태평무는 원래 수풀당 물애기씨의 춤사위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 60년 전만 해도

한양에서 무당이 되려면 물애기씨 당에 와서 고유를 하고 삼각산에 가서 명기를 받아 내림굿을 하고 무당이 되었다.

애기씨당에 모신 두 분 물애기씨가 한양 무당의 조종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곳 애기산을 한양의 본향산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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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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