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무속나라 밴드 (2023-12-06)
성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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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6 00:41
#18일차 #장릉 #영월장릉 #태백산산신 #태백산 #굿당/기도터 #단종 #단종태백산 #배식단사 #배식단 #엄흥도 #박충원
장소 - 영월 장릉
주소- 영월읍 영흥리 1090-1
태백산 산신이 누군지 모르시는 분. 이번 소개글 정독 입니다^^
영월 장릉 소개 드립니다.
아시겠지만 영월 장릉은 세계유네스코 문화유산이고
그 장릉에 계신분은 우리가 인사 다니는 태백산
산신 이십니다.
강원도 태백, 봉화, 영월의 산신제의 주인이신
단종은 삼촌인 세조에 의해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
영월로 유배 왔다가 사약을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단종이 죽은 후 태백, 봉화, 영월에 사는 주민들은
단종을 산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으시죠
소도동 헐리에서 영월 방향으로 약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어평(御坪)이라는 곳 있으며,
그 위쪽 마을을 정거리(程巨里)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단종을 산신으로 모시게 된
유래가 전해진다 합니다.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이 영월에 유배와서
사약을 받고 죽은 후,
태백, 봉화, 영월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하죠
꿈 속에서 흰말을 탄 단종이 태백산으로 가다
잠시 쉬려고 멈추자 백성들이 단종에게
“대왕마마 어인 행차 이시옵니까?”라고 물으니
단종이 슬픈 표정으로
“이제부터 짐이 영원한 안식처인
태백산에 산신이 되어 가는 길이니라.
이곳에서부터 짐이 기거할 땅이니라.”
고 했다는 것이죠.
그 다음날 백성들은 단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태백산으로 모였다 합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꾸었던 꿈이
모두 같음을 알고 단종이 쉬었던 자리를
정거리(程巨里)라 하고
단종이 기거할 땅이라고 했건 곳을
어평(御坪)이라 불렀다고...
태백산 산신이신 단종의 잠든 곳 장릉
사진으로 소개 합니다.
단종의 탄생부터 임금이 되고 상왕이 되었다가
쫓겨나 유배되고 죽음에 이르는 삶의 과정과
주변 인물들, 왕릉 조성에 관한 것까지
전반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역사관을 직접 경험 하시면 위 사진을 왜
찍어놨는지 아십니다.
역사관 보시고 나오시면 우측 계단으로 왕릉을
걸어 올라 가실 수 있습니다.
왕릉 인사드리고 아래를 내려보시면 픙광이 너무 좋습니다.
내려오는 계단은 달라요.
장릉 내 소개 하고픈 곳 이 있어서 게시글이 길어지네요.
배식단사(配食壇祠)와 배식단을 먼저 봅니다.
배식단은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忠臣位) 32인, 조사위(朝士位) 198인,
환자군노(宦者軍奴) 28인, 여인위(女人位) 6인,
모두 합하여 264인 위패를 봉안한 곳입니다.
매년 한식에 제향을 올리는데,
배식단사에 봉안한 위패를 배식단에 모시고
제사를 올린다고 하는데 배식단사 사진이 안보네요
잘 안나온 사진 삭제 하면서 같이 지웠나봅니다.
바로위 사진이 배식단 입니다
아래 사진은 장릉의 제례를 행하는
성역으로 드는 입구
그래서 홍살문이 있습니다.
정자각까지 가는 길인 참도(參道)는
신이 가는 길로 왼쪽 약간 높은 신도(神道)와
오른 쪽 낮은 사람이 가는 길인 어도(御道)로 구성됩니다.
영천(靈泉), 영혼의 샘, 신령스런 샘.
이곳에서 뜬 물로 제례를 받들었다고 합니다
홍살문과 배식단사 옆에 있는 이 비각은
충신 엄흥도 정려비와 비각이라 합니다
충의공 엄흥도 선생님은 충의지사라 하더군요
단종에게는 충성을,
사람된 도리를 용기있게 행한 것은 의(義)...
엄흥도 선생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고 모신 후
숨어 살았으나, 후에 단종이 복위되고,
역사의 재평가를 받게 되면서,
그의 충의도 함께 높여지고
기려지게 되었다 합니다
그렇게 작은 고을의 호장(戶長)이었던 그는
공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의공(忠毅公)이란 시호를 받았으며
사육신들과 함께 영월의 창절서원에
배향되었다 합니다.
입구에 왠 박충원 비각? 검색해 봤습니다..
조선 명종 때의 문신인 박충원(1507-1581)은
문과에 급제한 이후 영월군수로 발령 받으셨는데
이때 이 군에 3명의 태수가 연이어 죽어나가
모든 사람이 이곳에 부임하기를 꺼렸으나
박충원 이분이 아래와 같은 행동 으로
소문이 사라졌다 합니다. 내용은 그대로 옮기면...
낙촌비는 낙촌 박충원이 영월군수로 재임할 때
단군의 묘를 찾아냈던 사연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1974년 박충원의 후손들이 건립하였는데,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종이 죽자 엄흥도(嚴興道)가 시신을 찾아
황량한 산골에 암장하였는데
엄흥도가 죽고 난 후에는 묘조차 알 길 없었다."
그 후로 영흥고을에 군수가 부임하면
원인 모르게 죽어갔는데
목숨을 잃은 이가 무려 7명이었다.
중종 36년(1541) 박충원이 군수로 부임하였다.
비몽사몽간에 세 사람에게 끌려가 보니
숲 속에 여섯 신하가 어린 임금을 모시고 있었다.
임금은 처형을 명하였으나
신하 중 한 명이 살려두자 아뢰어 죽음을 면하였다.
잠에서 깬 박충원은 꿈속의 일이
단종과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고
엄흥도의 후손을 앞세워 단종의 묘를 찾은 후
묘를 정비하고 제사를 올렸다.
그래서 장릉 입구에 박충원 비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태백산 산신이 되신 단종
영월 장릉 소개 드렸습니다.










장소 - 영월 장릉
주소- 영월읍 영흥리 1090-1
태백산 산신이 누군지 모르시는 분. 이번 소개글 정독 입니다^^
영월 장릉 소개 드립니다.
아시겠지만 영월 장릉은 세계유네스코 문화유산이고
그 장릉에 계신분은 우리가 인사 다니는 태백산
산신 이십니다.
강원도 태백, 봉화, 영월의 산신제의 주인이신
단종은 삼촌인 세조에 의해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
영월로 유배 왔다가 사약을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단종이 죽은 후 태백, 봉화, 영월에 사는 주민들은
단종을 산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으시죠
소도동 헐리에서 영월 방향으로 약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어평(御坪)이라는 곳 있으며,
그 위쪽 마을을 정거리(程巨里)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단종을 산신으로 모시게 된
유래가 전해진다 합니다.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이 영월에 유배와서
사약을 받고 죽은 후,
태백, 봉화, 영월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하죠
꿈 속에서 흰말을 탄 단종이 태백산으로 가다
잠시 쉬려고 멈추자 백성들이 단종에게
“대왕마마 어인 행차 이시옵니까?”라고 물으니
단종이 슬픈 표정으로
“이제부터 짐이 영원한 안식처인
태백산에 산신이 되어 가는 길이니라.
이곳에서부터 짐이 기거할 땅이니라.”
고 했다는 것이죠.
그 다음날 백성들은 단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태백산으로 모였다 합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꾸었던 꿈이
모두 같음을 알고 단종이 쉬었던 자리를
정거리(程巨里)라 하고
단종이 기거할 땅이라고 했건 곳을
어평(御坪)이라 불렀다고...
태백산 산신이신 단종의 잠든 곳 장릉
사진으로 소개 합니다.
단종의 탄생부터 임금이 되고 상왕이 되었다가
쫓겨나 유배되고 죽음에 이르는 삶의 과정과
주변 인물들, 왕릉 조성에 관한 것까지
전반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역사관을 직접 경험 하시면 위 사진을 왜
찍어놨는지 아십니다.
역사관 보시고 나오시면 우측 계단으로 왕릉을
걸어 올라 가실 수 있습니다.
왕릉 인사드리고 아래를 내려보시면 픙광이 너무 좋습니다.
내려오는 계단은 달라요.
장릉 내 소개 하고픈 곳 이 있어서 게시글이 길어지네요.
배식단사(配食壇祠)와 배식단을 먼저 봅니다.
배식단은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忠臣位) 32인, 조사위(朝士位) 198인,
환자군노(宦者軍奴) 28인, 여인위(女人位) 6인,
모두 합하여 264인 위패를 봉안한 곳입니다.
매년 한식에 제향을 올리는데,
배식단사에 봉안한 위패를 배식단에 모시고
제사를 올린다고 하는데 배식단사 사진이 안보네요
잘 안나온 사진 삭제 하면서 같이 지웠나봅니다.
바로위 사진이 배식단 입니다
아래 사진은 장릉의 제례를 행하는
성역으로 드는 입구
그래서 홍살문이 있습니다.
정자각까지 가는 길인 참도(參道)는
신이 가는 길로 왼쪽 약간 높은 신도(神道)와
오른 쪽 낮은 사람이 가는 길인 어도(御道)로 구성됩니다.
영천(靈泉), 영혼의 샘, 신령스런 샘.
이곳에서 뜬 물로 제례를 받들었다고 합니다
홍살문과 배식단사 옆에 있는 이 비각은
충신 엄흥도 정려비와 비각이라 합니다
충의공 엄흥도 선생님은 충의지사라 하더군요
단종에게는 충성을,
사람된 도리를 용기있게 행한 것은 의(義)...
엄흥도 선생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고 모신 후
숨어 살았으나, 후에 단종이 복위되고,
역사의 재평가를 받게 되면서,
그의 충의도 함께 높여지고
기려지게 되었다 합니다
그렇게 작은 고을의 호장(戶長)이었던 그는
공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의공(忠毅公)이란 시호를 받았으며
사육신들과 함께 영월의 창절서원에
배향되었다 합니다.
입구에 왠 박충원 비각? 검색해 봤습니다..
조선 명종 때의 문신인 박충원(1507-1581)은
문과에 급제한 이후 영월군수로 발령 받으셨는데
이때 이 군에 3명의 태수가 연이어 죽어나가
모든 사람이 이곳에 부임하기를 꺼렸으나
박충원 이분이 아래와 같은 행동 으로
소문이 사라졌다 합니다. 내용은 그대로 옮기면...
낙촌비는 낙촌 박충원이 영월군수로 재임할 때
단군의 묘를 찾아냈던 사연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1974년 박충원의 후손들이 건립하였는데,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종이 죽자 엄흥도(嚴興道)가 시신을 찾아
황량한 산골에 암장하였는데
엄흥도가 죽고 난 후에는 묘조차 알 길 없었다."
그 후로 영흥고을에 군수가 부임하면
원인 모르게 죽어갔는데
목숨을 잃은 이가 무려 7명이었다.
중종 36년(1541) 박충원이 군수로 부임하였다.
비몽사몽간에 세 사람에게 끌려가 보니
숲 속에 여섯 신하가 어린 임금을 모시고 있었다.
임금은 처형을 명하였으나
신하 중 한 명이 살려두자 아뢰어 죽음을 면하였다.
잠에서 깬 박충원은 꿈속의 일이
단종과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고
엄흥도의 후손을 앞세워 단종의 묘를 찾은 후
묘를 정비하고 제사를 올렸다.
그래서 장릉 입구에 박충원 비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태백산 산신이 되신 단종
영월 장릉 소개 드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