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무속나라 밴드 (202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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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청 0 60
#자유게시판







내가 죽고서

백년이 흐르면 어떻게 될까?



백년이 넘은 조상(祖上) 할머니 할아버지의 산소(山所)를 정리했다.

남의 땅 산자락에 남아있는 봉분(封墳)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폐가 되기 때문이다.



백 년 전 죽은 조상(祖上) 할머니 할아버지는 누구였을까.

가족(家族)도 친구(親舊)도

그 시절 같이 살던 사람들도

모두 죽었다.

손자 손녀도 죽었다.

그 손녀의 아들이 나다.



조상(祖上)에 대한

기억(記憶)이 전혀 없다.

남은 것은 흙속에 묻혀 있던

작은 뼈 조각 몇 개 뿐이었다.

죽은 조상(祖上)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과연

이 세상에 살았던 적이 있었을까.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겠지.

그분들은 이제 누구의 기억(記憶)에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조상(祖上)의

화장(火葬)한 유골(遺骨)을

그분들이 살던 고향(故鄕)의 양지바른 산 위에 뿌려 드렸다.

내가 죽고 나서

백 년이 흐르면 어떻게 될까?

나의 가족(家族)이나 친구(親舊), 알던 사람들 모두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살려고 마련한

바닷가의 집도 누군가

다른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

나의 재산(財産)도 또 다른

누군가의 소유가 될 것이다.



세월(歲月)을 함께한 책장과

몇 개의 가구들도

모두 폐기물이 되고

나를 옮겨주던 고마운 차도

고철 덩어리가 될 것이다.

나는 바로 죽은 후에는

얼마동안 가족(家族)과

몇몇의 기억(記憶) 속에 남았다가

그 후로는 사진으로 있다가

무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의 후손(後孫)들은 기억(記憶) 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삼사년 전쯤인가

나의 초상화(肖像畵)가

지하실 문 앞의 구석에

다른 헌 액자들과 함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걸 봤다.



의뢰인이었던 화가(畵家)가

그려준 것이다.

내가 죽은 후에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이 될 것이다.

아파트에서 혼자 살다 죽은

노인(老人)들의 물품(物品)들이

쓰레기장에 나온다고 한다.

고급 책상(冊床)과

가구(家具)들이 버려지기도 하고

벽에 걸려있던 가족 사진들이

액자 속에서 세상을 내다보면서

서글픈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인간이란 내남없이

세상(世上)에 와서 수고하고 번민하다 죽음이라는 무대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그 기억(記憶)조차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내 삶의 잔고가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해 본다.

피와 살이 있고 생명(生命)이 붙어있는 이 나머지 시간이

내게는 정말 소중(所重)한 보물(寶物)이다.



나는 지난 칠십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 왔을까.

소년 시절 경주마같이 트랙을 달려야 하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는 눈가리개가 씌워져 있었다.

세상은 학교로 인간을 상등품(上等品)과 하등품(下等品)으로 구별(區別)했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품질인증을 받기 위한 열망(熱望)이 마음을 꽉 채웠었다.

그냥 낙오(落伍)가 무서웠다.

대학 시절 그런 경주 트랙에서 벗어나 초원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차별(差別)이 많은

지옥(地獄) 같은 세상에서

그런 초원은 관념이고 추상일 위험성도 있었다.

그 초원(草原)으로 가는 중간에는

날개 없는 내가 떨어질

바닥없는 깊은 절벽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았다.

결혼(結婚)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가장인 나는 가족(家族)의 입에

밥을 넣어 주어야 하는 성스러운 의무(義務)가 있었다.

새 둥지속의 털도 나지 않은

빨간 새끼들은 엄마새가 힘들게 잡아온 벌레 한 마리를

먼저 달라고 입들을 한껏 벌린다.

나는 엄마 새의 벌레 같은 돈을 잡으려고 세상을 돌아다녔다.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 속으로 옮기는 일이

내게는 공부(工夫)보다

열배 백배는 힘들었다.

돈을 주는 사람 앞에서

마음이 약해지고 주눅이 들었다.

내가 정직한 땀을 흘려 받는

대가(代價)인데도 눈치를 봤다.



돈은 내 영혼까지 지배하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장년의 산맥(山脈)을 넘고

이제 노년의 산 정상(頂上) 부근에 오른 것 같다.



눈을 뒤집어 쓴 겨울나무같이

머리와 눈썹에

하얗게 눈이 내려와 있다.



삶에서 처음으로 자유롭고 여유(餘裕) 있는 시간을

맞이한 것 같다.

이제야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학교(學校)도 직업(職業)도 돈도

더 이상 의미(意味)가 없는

평등한 세상으로 건너왔다.



황혼(黃昏) 무렵이면

바닷가 산책(散策)을 한다.

푸른 바다 저 쪽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태양은

붉다 못해 타오른다.

황혼(黃昏)과

밤사이의 짧은 시간이지만

자유로운 영혼(靈魂)으로

살아가고 싶다.



오늘은 내가 죽고 백년후의 세상(世上)을 한번 떠올려 보았다.

진작 그런 긴 안목(眼目)으로

생각을 했었더라면

부질없는 많은 걱정을 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저녁노을 빛으로 남는다.



- 엄상익 변호사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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